2021. 5. 28. 00:08ㆍ새 이야기 - Bird
내게도 일어난 신기하고 즐거운 일.
강원도로 나비를 보기 위해 떠났던 길.
이른 아침 일행을 따라 장화를 신고
산자락 밑 풀숲을 헤치며 작은 오솔길 따라 걷다가
내 눈길 끝에 붉은 흙이 드러나 있는 절개지가 보이고
그 중간 동그란 구멍이 보인다.
순간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10여 미터는 족히 되는 거리에 주변은 흙탕물이 고여있어
접근할 수 없는 곳이지만 구멍 아래 무언가의 배설물 같은
'응가'가 희미하게 흘러내린 듯 보이고....
혼자 갸우뚱하며 잠시 일행을 기다리며 쉬던 중
푸른 날개의 작은 새가 쏜살같이 구멍 밖으로 나온다.
물총새 둥지였다.
물총새가 둥지에서 포란 중인지, 아니면 육추 중인지 알 수 없었지만
멀지 않은 주변 강가로 먹이사냥을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
일단은 주변 칡넝쿨과 나뭇가지 사이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리모컨을 이용해 다른 편에 숨어 사진을 찍어보기로 한다.
어쩌면 가장 예민할 수 있는 둥지 주변이라
최대한 조심조심하며 움직임도 최소화.
이렇게 나뭇가지 위에 앉은 모습만을 보여주니 이것도 감사한 일.
부리 밑부분이 붉은 것이 암컷.
잠시 후 둥지로 들어가는 물총새의 모습을
연속으로 담는 것으로 기다림의 끝.(두 마리 아님)
일주일 후 다시 그곳으로 갈 기회를 만들어 찾아간 물총새 둥지.
그 누구의 간섭도 방해도 없이 오롯이 나만의 스튜디오인셈이다.
다행인 건지 물총새 둥지는 1주일전과 달라진 점이 없었고
이곳은 마을과 한참 동떨어진 강건너 산자락으로
우거진 칡넝쿨과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건물을 이용해
위장 텐트를 다 펼치지도 못하고 쭈그리로 세워놓은 후
그 안에서 물총새를 기다리게 된다.
장비를 설치하고 두시간즈음 지난 후
둥지로 들어가는 모습을 포착한다.
잠시 한눈을 팔면 이렇게 둥지로 들어가는
꽁무니만 보인다.
내가 원하는 건 물총새의 프로필 사진.
돈을 지불하고 사진을 찍는 곳이 아닌 자연의 상태에서
주변의 깔끔한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는 그 모습만이라도
정확하고 예쁘게 담아보는 것이 나름의 소박한(?) 목표였는데
부디 그 바람이 이뤄지기를...
이날 오전 7시가 갓 넘은 시간부터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시간까지...
결과물은 비참했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즐겁기만 했다.
지난겨울 팔당에서 참수리를 기다리던 때가 떠오르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나비 촬영을 다녀온 일행이 잠시 들러
빵을 사 가지고 와 끼니(?)를 해결하며
둥지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과
때마침 부는 강풍에 물고기를 물고 왔던 물총새도
다시 돌아갈 상황에 내 위장 텐트도 넘어가고,
누가 봤다면 실소를 금치 못할 장면도 연출하며
탐조인들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물총새를 기다린다.
9시간에 가까운 시간 중 원하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고 ㅠㅠ
그저 둥지로 들어가는 쏜살같은 물총새와 (feat. 1/8000초~~)
오전 시간 아주 잠깐 두 번에 걸쳐 둥지 근처 나뭇가지에
사냥해 온 작은 물고기를 물고 있는 물총새를 본 것이
오늘 9시간의 결과물.
둥지를 나가 다시 돌아오는 간격이 짧으면 5분,
길면 두어시간이 넘어가기도 하니
한없는 기다림의 연속......
두 번째 물고기를 물고 온 물총새.
나뭇가지 사이로 그 모습이 보이지만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첫번째와 같은 나뭇가지에 앉은 모습.
다른 분들의 사진 촬영에 정보를 취합해
나름 둥지부근에 횃대를 마련해놓았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는 물총새. ㅠㅠ
초면이지만 너무 거리두기하는거 아님?
순식간에 둥지로 들어가버리고
둥지를 들어올때와는 다르게
뒷걸음으로 둥지를 나와 순식간에 방향을 바꿔 날아간다.
나름 편하게 아름답게 담을 수도 있다고 하는 물총새.
다른이들에 비해 턱없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비록 원하는 장면은 담지 못해 아쉽고 아쉽지만 이 또한 자연의 모습인걸...
가까운 거리에서 물총새의 푸른 날갯짓을 본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날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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