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묘를 다녀오다..

2010. 10. 5. 08:15judy 우리나라 구경하기/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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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숲 둘레길 끝에서 연산군 묘를 찾아가기 위해

 

다시 길을 걸어간다.

 

이정표에서 1.6Km라고 했으나 이정표가 보이질 않는다.

 

걷다가 동네 어르신께 여쭤보니 아주 상세하게 알려주신다.

 

젊은 사람들이니 몇 십분을 걸어간들 어때?...하시면서..ㅎㅎ

 

(젊어도 저 오늘 꽤 걸었어요..그래서 발이 아파요..ㅠㅠ)

 

 

 

 

 

오르막 고개를 넘어 법종사라는 절을 지나자

 

조그만 숲길에 자은정사라는 팻말이 보이고

 

그 길을 따라 숲길로 걸어간다.

 

사실...이때 다리도 좀 아프고 어르신이 알려주신 길도 안 나오고

 

힘도 들고 심통이 부글부글 ...슬슬 짜증이 밀려온다..

 

그러나 바로 생각접음...나만 힘든게 아니란 생각에,

 

그때 아마 우린 서로 참지 않았을까.....

 

아니...그가 훨씬 더 많은 인내를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분위기도 바꿀 겸..

 

"자갸~~길 참 좋다..이 길로 옛사람들이 지나다녔을까?"

 

"글쎄~~~그랬을지도..."

 

 

 

 

 

 

 

주말농장 길을 따라 이렇게 주택가 골목을 지나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인다.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라고 한다.

 

서울시 지정보호수 제1호이고,

 

이 곳에서 불이 날 때마다 나라에 큰 일이 생긴다고...

 

 

 

 

 

 

 

 

 

 

 

 

은행나무 바로 앞이 연산군묘역이었다..

 

 

 

 

 

 

 

이곳은 입장료가 무료이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입장을 하면 된단다..

 

왕릉이 아니어서 무료입장인가보다.

 

50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역사는 폭정과 폭군이었던,

 

신하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내려온 그에게 너그럽지 못하고

 

홀대하는건 아닌지.. 한때는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조선 제 10대 왕이었던 연산군(1476~1506) .

 

태조 이성계 이래 드물게 나타나는 적장자로서의 왕이었으나

 

왕릉으로서의 규모도 아니고, 초라하기가 그지 없다.

 

19세에 임금에 오른 젊은 임금, 시와 붓글씨를 잘 써 멋을 아는 임금이기도 했나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폭군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말이다.

 

제일 뒷편 왼쪽이 연산군, 오른쪽이 부인 신씨의 묘이다.

 

 그리고 맨앞의 두 무덤은 연산군의 딸과 사위의 묘.

 

 

 

 

 

 

 

묘를 지키고 있는 돌 석상의 코가 모두 납작한것을 보고

 

혹 옛날부터 코를 갈아먹으면 아들을 낳을수 있다는

 

미신때문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ㅎㅎ

 

 

 

 

 

 

 

 

연산군은 왕위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묘호(廟號)도 받지 못하고 왕릉의 위상을 갖추지도 못했다.

 

다만, 성종의 적장자였기 때문에 대군의 예에 맞게 묘를 쓰고,

 

그래서 연산군의 능(陵)이 아니라 연산군의 묘(墓)라 한다.

 

 두번의 사화로 인해 신하들은 그의 왕위를 박탈하고 연산군으로 강등시킨 후,

 

강화도로 유배를 보낸다. 그는 강화도로 쫓겨난 후, 마음의 병 때문이었을까....  

 

그 해 31살에 바로 세상을 뜨고, 그 곳에서 죽어 묻혔으나

 

그 후 부인 신씨의 요청으로 중종 8년에 사위가 묻힌 방학동의 능성 구씨 선산에 묻혔다.

 

 

 

 

 

 

 

 

묘역 뒷편에서.........

 

아파트로 둘러싸여진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해 할까 싶었다.

 

후세에서는 폭군으로만 여겨지고 있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그 마음 깊은곳에서의 상처에서 기인된 행동이

 

그를 더욱 더 거칠고 사나운 임금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한때는 권력의 최고점에 있던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덤은 초라하고 찾는이도 별로 없어보이는

 

아주 조그만 묘에 불과해 보였다..

 

권력의 무상함이 느껴지는

 

참으로 불쌍한 임금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 왕릉을 찾아가보자는 그의 의견처럼

 

하나 둘씩 역사기행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와 함께하는 왕릉방문은

 

언제나 내게 새로운 역사수업이 될 듯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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