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문화의 창출지..먹향이 가득한 곳 소수서원~

2012. 9. 27. 12:28judy 우리나라 구경하기/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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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자리잡은 소수서원을 가는길.

여전히 아침부터 퍼붓는 빗줄기때문에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

하지만 모처럼의 먼거리 여행인지라 주저없이

내 몸은 어느새 매표소를 향하고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주세붕이 창건한 경렴정.

이곳에서 시연을 배풀고 호연지기를 가꾸던 곳이라한다.

 

 

 

강물 너머 보이는 취한대는 퇴계 이황선생이 명명한것으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이라한다.

 

 

 

조금은 이른 오전 여전히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관람객들이 소수서원을 보기 위해 들어서고 있었다.

어쩌면 이들도 우리처럼 모처럼만에 나온 나들이길,

세찬 비가 내려도 볼것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ㅎ

 

 

 

쏟아지는 빗줄기가 원망스러울쯤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으니..

탱구리아저씨와 친분이 있는 친구분 커플을 이곳에서 만났다.

약속도 없이 서로 다른 휴가기간동안 같은 곳을 여행하는 친구를 만난다는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엇다.

비가 오는 바람에 우산속에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일정때문에

아쉽게 헤어졌는데 정말 세상에 이런일이~~~~

 

 

 

강학당은 보물 1403호로 배흘림 기둥 양식으로 지어졌고,

이곳에서 유생들이 모여 강의를 듣던 곳이며,

현판인 백운동은 서원의 처음 이름이라 한다.

 

 


 

 

소수서원은 고려시대의 명신이며, 학자인 회헌 안향을 제향하는 서원이다.

조선 중종 37년(1542) 풍기 군수 주세붕이 안향을 제사지내기 위하여 사묘(祠廟)를 세우고

그 이듬해 안향 선생을 봉안하며 학사를 건립하여 백운동서원이라 하였다.

 중종 39년(1544)에는 안축, 안보를 배향하였으며

명종 3년(1548)에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후

명종 5년(1550) 소수서원으로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의 시초가 되었으며,

그후 인조 11년(1633) 주세붕을 추향하여 향사를 지내고 있다.

 서원은 옛 숙수사지의 넓은 터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문성공묘는 보물 1402호로 회헌 안향 선생의 위패를 모신곳이라한다

왕이나 나라의 큰 인물을 모신 곳에만 묘호를 쓰게 한 점을 보면

안향선생의 위치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할수있는 곳이었다.

 

담장앞에 숙수사지 목탑의 흔적이 보인다.

 

 

 

 

 

 

 

장서각~

오늘날 대학 도서관으로 임금이 직접 하사하신

"어제 내사본" 등 많은 장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서책은 좌우지선의 예에 따라 스승의 숙소 우측에 세워져있다한다.

 

 

 

일영대~

상.하부의 석재로 만들어진 해시계로 상부에 꽂은 막대기 그림자가

아래쪽 12간지에 드리워지는것으로 시간을 재던 곳이라한다.

 

 

 

영정각에는 안향선생과 주세붕선생의 초상이 모셔져있었는데

 

 

 

 

 

우측의 안향선생 초상은 국보 제 111호로 지정되어있었다.

 

 

 

사료관~

 

 

사료관은 제향과 강학에 관한 목판, 고서등을 전시해

서원의 기능, 역활등을 쉽게 설명해 놓은 미니 전시관이다.

 

 

 

 

 

 

 

 

 

 

 

 

 

학구재~

유학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자자리로 공부를 잘하라는 뜻으로 건물입면이 

공(工)자로 지어져있다한다.

스승의 그림자를 피해 뒷물림으로 지었으며

방바닥의 높이도 스승의 집무실보다 한자가량 낮게 만들었다한다.

 

 

 

일신재~

서원의 원장과 교수의 집무실이다.

 

 

 

쏟아지는 비로 인해 근처에 있는 선비촌이나 다른 많은 곳을 돌아볼 수없음이 못내 아쉬웠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돌아보는 내내

학창시절 좀더 열심히 공부할껄...하는 후회가 살짝 밀려들었다.ㅎ

 

 

 

취한루 근처 경자 바위에 선명하게 붉은 경자가 보였다.

많은 비로 인해 강물이 불어 경자의 모습이 온전히 보여지지 않아서

사료관내 사진으로 그 모습을 보는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야만했다.

 

 

 

백운동은 주세붕선생이 서원을 창건할때 중국의 백록동 서원을 참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황선생이 글자를 새긴후  흰 칠을 하였는데

조선 세조3년 단종복위운동의 실패로 희생된 원혼을 달래기 위해

글자에 붉은 칠을 하고 위혼제를 드렸다고 한다.

근처에는 단종복위운동으로 인해 운명을 달리한 금성대군신단이 위치해있었다.

 

 

 

 

 

쏟아지는 비가 원망스러울정도로 많은 비로 인해

제대로 볼 수없는 없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곳이 영주였지만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산지라 일컫는 소수서원을 들러보니

사각거리는 종이소리와 진한 먹향이 머물러있었을 이 곳에 와본것만으로도

내 마음의 양식이 충만한 느낌이었다.

 

이젠 정말 자판에 익숙한 손 보다는

직접 필기하는 습관을 들여야할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건 왜인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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