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1. 22:30ㆍjudy 우리나라 구경하기/충청도
서산 가야산에 올랐습니다.
산행이 아니어서 편하게 오를 수 있었지만
서산지역에 도착해 목적지로 향하는 길
일기예보에는 없었던 안개비가 내리고
계획에도 없었던 비라 그저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오늘은 망원렌즈만 가지고온 탓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게 되네요.
화질이 좋지않지만 인증수준으로만
남겨봅니다.
http://blog.daum.net/judy66/1858
이런 멋진 풍경이었는데...
자욱한 안개로 보이지않았던 그림같은 풍경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짙어지는 안개탓에
아무런 성과도 이루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근처 흥선대원군의 부친 남연군묘를 찾아가보기로 합니다.
남연군 묘는 흥선대원군의 부친이며
조선왕조 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 1대 황제인 고종의 친조부 무덤이다.
묘역은 충청남도 기념물 80호로 지정되었으며,
묘 앞에 있는 비석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1호로 지정되어 있다.
흥선대원군에게 지관이 말하기를
가야산 동쪽에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오는 자리(二代天子之地)가 있고
광천 오서산에는 만대에 영화를 누리는 자리(萬代榮華之地)가 있다고 하니,
흥선군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가야산을 택했고,
그 중 가야사 금탑자리가 2대 천자가 나올 자리라 하여 가야사를 폐하고
묘를 썼다고 합니다.
그는 우선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의 묘를 임시로 탑 뒤 산기슭으로 옮겼고,
그 땅은 영조 때 판서를 지낸 윤봉구의 사패지로 그 후손에게서 자리를 빌렸다고 합니다.
연천에서 가야산까지 머나먼 길, 종실의 무덤을 옮기는 일이었으므로
상여는 한 지방을 지날 때마다 백성들이 동원되어 옮겼는데,
맨 마지막에 운구를 한 ‘나분들’(남은들) 사람들에게 왕실의 상여가 기증되었고
이 상여는 지금 남은들마을 작은 전각안에 보전되어 있어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옮겨진 남연군의 묘가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에 의해 파헤쳐졌지만
그당시 조선왕실의 묘에는 석회로 관을 감싸는 형식이었고,
거기다 지관은 묘를 만들때 석회를 사용하라는 얘기를 해주어
석회를 1미터 가까이 들이부었다고도 하니
최종적으로 관은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탄압은 더욱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가야사의 금탑을 부수고 절을 폐한것이
마음에 걸린 흥선대원군은
고종이 즉위한 몇 달 뒤에 가야골 아래 상가리에 한양에서 목수를 보내어
은덕을 보답한다고 지은 절이 보덕사(報德寺)라고 합니다.
실제 천하명당이라는 남연군 묘앞에 서보니
과연 그 말이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아도
저절로 수긍이 되는 곳이란 느낌이 드는곳이었습니다.
커다란 산들이 에워싸듯 감싸고 있고
무덮앞으로는 마을이 넓게 퍼져있는 모습이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 내려보는 지형으로 보여지더군요.
천하명당의 기운을 받겠다고
잠시 서서 인증사진도 찍혀봅니다.
하지만 이미 2명의 왕이 나온 자리이니
그 기운은 다 소진되었겠지요 ㅎ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남연군의 묘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그 좋다는 기운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저또한 그랬으니까요 ㅎㅎ
가야산자락을 빙 돌아 찾아온 남연군 묘에서
잠시 역사적 사건을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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