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문무왕과 신문왕의 정성이 어린 경주 감은사지

2014. 10. 25. 11:54judy 우리나라 구경하기/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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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향해 가는길에 만난 감은사지 절터.

 

국보 제112호로 높이 13.4m. 동서로 건립된 두 탑의 규모와 형식은 동일하며,

현존하는 석탑 중 거탑에 속한다.

기단은 상하 이중으로 되어 있고 지대석·중석·갑석은 12장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층기단에는 3개, 상층기단에는 2개의 탱주를 세웠다.

                          ----- 다음백과 발췌

 

 

 

동탑과 서탑이 서 있는 감은사지는

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이 동해 근처에 감은사를 세워

법당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조금만 걸어올라가면 만날수 있는 감은사지석탑.

 

 

 

 

 

 

 

 

 

 

 

 

 

 

사지는 쌍탑식 가람으로 창건연대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석탑 역시 한국 석탑의 대종을 이루는 신라양식의 석탑 중

양식적인 완성을 보이는 가장 오랜 것이라고 한다.

 

 

 

 

 

 

 

 

 

 

 

 

감은사지(感恩寺址)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신라 시대의 절인 감은사의 터로서

대한민국의 사적제31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신라문무왕은 삼국통일을 이룬 후 나라를 더욱 굳게 지키기 위해 이 절을 짓기 시작했으며

신라 31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즉위한 이듬해(682)에 완공하고 감은사(感恩寺)라고 불렀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감은사 바로 앞까지 바다가 있었던 증거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천년 넘게 흙이 쌓이면서 바다가 감은사에서 점점 멀어지고

지금의 모습으로 변한것이라고 한다.

 

절터에 대한 70년대의 발굴 결과

용이 된 문무왕이 물길을 따라 감은사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절의 금당 밑에 공간을 만들었다고한다.

절의 금당 건물 밑을 인공 연못으로 만들어 물을 채워놓고는

그 위에 돌을 쌓아서 건물을 세웠던 것으로

한국 사찰 중에서도 대단히 특이한 구조임에는 틀림이 없는듯하며

이 마루 장대석 밑은 독특한 구조로 다른 예가 없는 것으로 보아

동해의 용(龍)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한 것 같다.

 

 

 

 

 문무왕은 해변에 절을 세워 불력으로 왜구를 격퇴시키려 절의 이름을 진국사(鎭國寺)라 하였으나, 

절을 완공하기 전에 위독하게 되었다.

문무왕은 승려 지의법사에게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킬 것"을 유언하고 죽자,

이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안장하였으며,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감은사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절을 완공하면서 금당 아래에 용혈을 파서

용으로 변한 문무왕이 해류를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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